고대문화 47호

발간사

대안 사회를 위한 모색

서근애(편집장 국문96)

요즘은 글이라는 것을 쓴다는 것이 무섭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비어가는 머리와 마음이란 걸 드러내기 싫어서인 것 같다. 그러나 내 손으로 만든 책의 발간사를 쓰는 손놀림은 날렵하다. 왜일까? 마지막 힘을 소진하는 몸부림이기 때문일까?

목표라든지, 목적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주는 위압감에 눌리면서도 내가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운동을 다른 세상을 위한,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아마 그러한 세상을 그려보는 속에서 느끼는 희망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올까?, 온다면 어떻게 올까?에 대한 구체적인 상들을 그려보는 데 점점 상상력이 부족해짐을 느낀다. 나의 상상이 장미빛 환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변화를 일으키는 일과 변화를 모색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노동해방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여성해방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각 단위의 사람들이 다른 단위의 사람들의 억압에 대해 공감하고, 해방을 위한 연대에 대한 기본 토양을 공유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며칠 전 한양대에서 있었던 ‘동성애, 비정상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동운동, 여성운동, 그리고 인권운동 단체에서 각각 나온 패널들이 동성애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이야기하고 운수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나와 동성애 운동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들었을 때, 동성애 운동을 하는 사람이 노동운동과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는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사회의 방향성 속에서 동성애자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몇 년 전의 배타적 분위기보다 좀 더 나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동성애자가 주최한 토론회이기에, 아직도 내 주위에는 그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체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단위의 역량 축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연대활동이라는 것이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고 이에 대한 인식 또한 넓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노력들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의 방향성을 갖기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 생태학적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리고 고대 내에서 생태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토론할 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경제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분석을, 정치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하였으나 많은 부분 혼선이 있었고,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호에서는 좀 더 구체화된 모습으로 학우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이다.

IMF는 문화와 자치 영역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실제 많은 학교들이 자치권 탄압, 대학언론 탄압을 겪고 있으며 이는 올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통신에서 ‘전국대학생기자단연합’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서도 TV라는 매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학언론은 편집권, 재정권, 인사권이 보장되어야지만 언론의 본래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기본전제만은 변함이 없다. 학우 여러분에게 대학언론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고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와 소통의 중심에 고대문화가 서고 싶다. 이러한 취지에서 2학기에 주제논문을 받아 심사하고 상금도 수여하는 ‘석탑논단’을 신설하려고 한다. 학우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생태학/잘 좀 살아보자

  1. 현대환경문제와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도전
  2.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인터뷰1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인터뷰2 녹색연합
  3. 지금 고대에서는…
    강의1 환경위기와 문학의 길
    강의2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강의3 사회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강의4 환경보전을 위한 법적 대응
    〈보론〉 생태여성학론의 형성과정과 그 내용

IMF 시대에 무슨 생태학? 고대문화 47호를 받아 본 사람들이 느끼는 황당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위기는 결코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세판단을 통해 생태론에 집중하게 된 것임을 밝혀둔다.

환경운동을 하나의 부문운동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위기를 심각하게 과대포장한다, 원시사회로 돌아가자고 한다, 언론이나 기업의 의해 오히려 이용당한다, 시민운동이나 아줌마 운동거리밖에 되지 않는다—이것들이 환경운동에 덧붙여진 찜찜한 소문들은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글은 생태학적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론이다. 만약 그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동의한다면 당신은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텀은 원래 네 개로 기획되었다. 생태학적 사회는 지향하는 사람들이 실제 현실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 사회의 상이 어떻게 생태학적 패러다임과 접맥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태학의 brain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환경교육원’과 시민단체인 ‘녹색연합’, 소유와 분배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다는 ‘야마기시 공동체’, 그리고 새로운 교육, 대안 교육을 하고 있는 ‘풀무학교’. 이렇게 4개의 인터뷰를 기획했으나 기획자의 미숙으로 두 개만 실리게 되었다. 이 점은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 번째 글은 생태학의 문제제기가 기존 학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기존 학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학, 철학, 사회학, 법학을 중심으로, 고대에서 관련 과목을 강의하시는 분들에게 부탁드렸다. 그리고 고대에는 아직 개설되지 않은 수업이지만 그 유의미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생태여성학을 보론으로 실었다. 여성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많은 논의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환경문제와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도전

정규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1. 위기는 기회다

흔히 지금을 ‘위기의 시대’라고 부른다.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러한 ‘위기’ 의식을 단순히 세기말적 심리현상의 표출로만 보기에는 지금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 조건들이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함께 해결과정 또한 사회적 보편성과 설득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과 생존 조건 자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련의 구체적인 사회현상과 조건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깊은 성찰이 있어야만 ‘위기’ 속에 내재된 새로운 질적 도약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70년대를 기점으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에 들어 사회 전면에 ‘새로운’, ‘대안적인’과 같은 수식어를 동반하면서 등장한 ‘생태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탐색의 필요성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 기반한다.

생태학적 패러다임은 과연 현실의 당면한 과제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떠한 배경하에 등장하였는가? 그리고 이들이 제기하는 현실인식과 실천논리는 어떠하며 사회에 대한 실천적 함의는 무엇인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생태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의 객관적 소개보다는 논의의 활성화를 통한 인식의 범주의 확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개인적 신념과 가치를 상당히 내재한 채 논의를 전개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여기에는 하나의 거대이론이 진리를 독점하던 시대가 지나고 다양한 가치체계와 이론이 공존, 갈등하고 연합하는 역동적 과정 속에서, 당면한 시대에 적합한 사회적 가치체계와 규범이 창출될 수 있다는 개인적 믿음과, 한편으로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생태학적 논의’가 그 역사성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개념적으로 너무 협소하게, 또는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논의 또한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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