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의 종언과 학생운동의 종언
(이 글은 지난 호 이지원 씨의‘학생운동의 종언, 혹은 부활의 기회’에서 제시된 의견에 대한 글입니다.)
1. 가라타니 고진과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이 논의한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문학을 근대문학으로서 지탱하던 일련의 역사적 조건이 변화했다는 수준에서만 흔히 이해되고 있다. 근대문학은 역사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처럼 특권적인 담론의 중심, 혹은 무수한 문학청년들을 끌어들였던 유혹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피상적인 독해에 불과하다.
이런 이해방식을 넘어서, 고진의 '선언'을 한국적 맥락에서 더욱 멀리 밀고 나간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고진의 번역가이자 동시에 문학 비평가인 '조영일'이다.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한국문단 문학의 종언으로 바꿔 말하며, 궁극적으로 문단의 자연사를 겨냥하는 급진적인 인물이다. 사실 그가 '한국문학'의 위기를 파악하는 방식은 일견 지극히 단순한데 그것은 외국의 번역서에 비해 한국문학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사태에 다름 아니다. 고진을 따라서 조영일은 이러한 사태를 단지 정신적으로 극복되거나 민족적 자부심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물질적 '현실' 그 자체로 지적한다. 조영일은 이것을 단순히 '환경'의 변화로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문학에 도래한 위기를 보다 근본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그 자체의 내재적 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문학' 시장에서 실제로 팔리는 다른 국가의 문학에 비교한다면 한국문학의 질적 빈곤함이 실증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문제는 이런 문학적 빈곤이 다음과 같은 활동을 수반했다는 것이다. ― 상대적으로 빈약한 작품군에 '한국 문학사'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기 위해 이러한 질적 빈곤을 은폐하고 그것을 양질의 작품으로 과대포장하는 제도적 활동이 존재했다. '한국 근대문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문단과 출판사 그리고 비평계 간의 역사적 공모는 실제로 존재했다. ― 그것이 한국문학을 팔리게 만들었던 '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문단) 문학'이 팔리지 않게 된 것은 시절이 수상해서가 아니라 그 동안 한국문학이 내용상의 깊이와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승부하기는커녕, 문학 외적인 권위와 제도적인 요소들을 등에 업고 내실 없는 문학작품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비평'의 책임이 드러난다. 문단의 권위에 종속된 비평이 별 내실 없는 문학에 순문학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모종의 '문학적 베팅'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우리가 경제현상의 영역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실질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명목가치에 근거해 문학을 팔아치우는 관행은 결국 '공황', 즉 '팔리지 않는' 사태로 귀결된다. 이것이 한국의 근대문학의 종언 즉 문단문학의 종언이다. 가라타니 고진을 따라 이에 대해 조영일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한 형태의 문학은 이제 “끝났으며”,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조영일의 이러한 논변노선의 기본적인 정당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창작이든 비평이든 그것은 자립적인 포지션에 놓여 있지 않으며 항상 어떤 물적 토대의 기반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는 상식을 '비평가'로서 가장 용기 있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의 비평에 대한 숱한 반론들이 아무리 부분적으로 옳은 구석(조영일의 실제 작품비평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우며, 문단문학이 특정 작품을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깍아 내린다 등)이 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조영일 씨의 비평이야말로 한국에서 비평가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몽매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급진적 제스처를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보충되어야 할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조영일이 고진의 종언 선언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독해할 수 있게 한 것은 결국 한국의 문학시장에서 일어난 변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영일과 동일한 노선에서 현실의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새로운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한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문학 중에서 '팔리는' 게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문단문학'이지 않은가?
한국어로 쓰인 순문학이 대부분 팔리지 않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단의 몇몇 스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작품이 팔리며 명성을 얻는 사태가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또한 '정신적으로' 또는 극복될 수 없는 물질적인 현실이 아닌가? 조금 오래된 일례이지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때 조영일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러한 작품에 모종의 가족주의-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내재되어 있다는 식의 진부한 문화비평이었다. 원래 그가 지적했던 것은 환원할 수 없는 사실의 수준, 한국문학이 전반적으로 '팔리지 않는' 사태였는데 여전히 '팔리는' 작품에 관해서라면 이렇듯 조영일은 당위적으로(이런 게 팔리는 건 이상하다) 접근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도착적인 태도가 아닌가?
오히려 '근대문학의 종언'이, 그것이 전달하는 외상적 메시지가 한국의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문단문학은 이제 끝났다”나, “문단문학을 끝장내야 한다”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문단문학은 영원하다” 혹은 더 나쁘게 “문단문학이여 영원하라”는 수준에서 받아들여져야하지 않을까? 순문학이고 장르문학이고 간에 이제 더 이상 문학은 팔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여전히 명성을 얻고 팔릴 가능성이 있는 작품은, 그것이 훌륭하든 형편없든 무관하게 문단의 허울뿐인 권위를 입고 생산된 텍스트이다. 중요한 사실은 대중의 눈에도 적어도 몇몇 스타 작가들에 관한한 문학의 권위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독자들 가운데서, 문단 내부에서 생산된 작품들이 타이틀을 얻으며, '한국문학'을 대표/재현represent하는 것이 '한국 근대문학의 종언'을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사태가 아닌가?
2. 이지원과 학생운동의 종언
이지원은 근래에 <학생운동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것은 조영일의 '종언'테제에 대한 수용과 어떤 대칭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종언에 이르렀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른바 ‘스펙 쌓기’의 시대 속에서 학생운동의 대의와 그것이 제공하던 연대감에의 경험이 학생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생운동 속에서의 숭고한 경험은 개별적인 스펙 쌓기나 문화적인 취미활동 속에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무엇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영일이 개개의 문학작품이 지닌 예술적 당위성과 별개로 그것이 ‘팔리지’ 않는 데에서 그것의 근본적 위기를 파악하듯, 이지원도 학생운동이 추구하는 당위성과 별개로 그것이 단순히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 책들처럼 '흥행'에 성공하지 않는다는 사태에서 근본적인 위기를 발견한다. 이지원은 학생운동의 종언을 직접적으로 예증하는 것은 그것에 가해지는 외적인 탄압이나 적대적인 반응(이것은 학생운동의 종언에 대한 증거이기는커녕 오히려 궁극적 반례로 간주되어야 한다)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운동이 무엇을 시도하든 간에 마찬가지로 되돌아오는 학우들의 전반적인 '무관심'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지원은 매우 보기 드물게 학생운동의 종언을 그 당위성의 상실과 혼동하지 않는다. 학생운동이 타성화되고 잘못된 대의를 고수했다는 데서 그 그것의 종언을 찾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종언의 내적인 책임을 면하려는 사고에 불과하다. 애초에 학생운동의 종언은 그것이 지닌 대의나 전략 내지는 흔히 이야기하는 소통방식에서 초래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는 흔한 주장대로 단순히 학생운동의 당위성이 퇴색했다고 주장하는 도덕주의적 수사를 넘어선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그가 학생사회를 벗어나 그 밖의 진보적 의제와 연대하면서 위안을 얻자는 입장을 거부하는 데 있다. 놀랍게도 그는 학생사회에 대한 운동의 영향력이 종언을 고했다면 애초에 그 종언을 초래했던 '학생사회'를 이루는 물질적 기반과 제도적 틀을 재구성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라는, 가장 급진적인 내기를 제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난 시절 이뤄졌던 정치적 권리의 확장과 민주화 투쟁 속에서 여타 사회적 영역이 쟁취한 '시민권'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가장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장이 되었던 곳에서는 낯설다는 사실을 이지원이 지적했다는 점이다. 실제 정치참여 통해 일정부분 제도화를 성취한 시민사회의 연대의식은 정작 학생사회에서는 사적 친밀감의 네트워크와 숭고한 정치적 대의에의 참여라는 선택지 속에서 양극화되어 있다. 즉 학생들의 가능한 연대의식이라 해봤자, 술자리에서가 아니라면 집회참여라는 양자택일 속에서만 존재한다. 군부정권 하에서의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학생들은 얼마든지 두 선택지 모두를 거부하고 각자의 자폐적인 취미영역이나 자기계발에 몰두할 여지가 있다. 이것이 그동안 시민사회 운동의 주축을 담당하던 학생운동이 오히려 시민사회의 어떤 영역보다 더 빠르게 탈정치화된 이유이다. 여기서 발리바르가 '씨빌리테', 즉 급진적 '시민권'으로 일컬은 그 무엇이 떠오른다. 그것은 운동의 폭발적인 요구와 봉기 속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던 해방적 대의와 연대의식을 체계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앞서 말한 (1)운동의 순간 속에서 체험되는 숭고한 대의에 대한 충실성과 (2)사적인 친밀감 속에서의 나르시즘적 동일화, 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연대에의 경험에 현실적/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컨대 반인종주의 캠페인 운동에서 확장된 시민적 권리는 단지 그 운동 속에서만 지속될 게 아니라, 마땅히 이민자들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 부여라는 국가적/제도적 틀 안에 재기입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지 운동뿐만 아니라 국가/이데올로기 영역 자체가 재정의되면서 진정한 정치적 효과가 발생한다. 씨빌리테=시민권이란 운동과 제도 양자를 매개하며 시민적 연대의식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학생운동에서는 이 양자(운동과 제도) 사이의 연결고리가 그 동안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단지 학생운동을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에 놓아두자는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권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학생사회의 수준에 거꾸로 '도입'하자는 제안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이지원은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간의 관계성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학생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수준(학생사회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공리계 수준)에서의 '개입'을 성취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해도 결국 학생운동은 시민운동과도 소원한 어떤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학생사회의 재구성'을 실제로 이끌어낼 때에만 비로소 학생운동 그 자체 역시도 단지 시민사회 운동의 하위범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시민적'이고 '보편적'인 정치적 개입으로서 즉각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시민운동과 학생운동이 현실적으로 맺었던 관련성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의존하는 우연적인 결합에 불과하다.
이것은 조영일과 마찬가지로 종언의 선언을, 혹은 종언 이후의 사태를 가장 급진적인 '귀결'로 밀고 나가는 제스처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서 우리는 종언에의 선언으로부터, 가장 급진적인 '연산'이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종언'이라는 사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계산'하며 재창안할 수 있을까? 이 물음 자체는 곧 '종언'이라는 사태가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개입의 지평으로서 사고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 상실된 대의의 나르시즘
그런데 우리는 정작 이 연산의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생운동'에 대해 내린 평가들이 과연 온당한지, 학생운동의 대의가 그렇게 깔끔하게 '끝났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위상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앞서 이지원의 탁월한 논의에서 결락된 몇 가지 일견 사소하게 보이는 지점들을 지적하고 싶다. 고려대학교에서 일련의 학생들이 본관건물에서 교직원들과 대치했던 사건에서 촉발된 출교사태(그때 그러한 대치상태는 '감금'이라고 묘사되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때, 그 사건의 최초 국면에서 학생사회로부터 격렬한 저항과 혐오감이 표출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건희 박사학위 수여식 저지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격렬했던 이 반응은 결국 '학교 이미지 훼손'이라는 동일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학생대중들이 몇몇 학생운동가들에 대해 분명히 상상적으로 경쟁하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짤막한 순간이 드라마틱한 절정으로 치달은 것은 단연 일련의 공대생들이 검은 옷을 입고 학생들이 스승에게 한 패륜적인 짓을 '석고대죄'하는 퍼포먼스에서였다. 이 낯 뜨거운 연극이 보여주는 건 분명 학생운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정치적 대의'가 대중들의 정서와 경합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의 지루한 법정공방이 지속되면서, 출교사태에 관해 학생사회가 되찾은 묘한 '평정'만을 보고서 학생운동에 대한 공중의 반응을 단지 '무관심'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이 일반대중에게 적극적인 거부감을 일으키는 부분은 그것이 아무리 퇴행적이라 해도 여전히 분석되어야 한다. “운동”에 대한 판에 박힌 거부감은 (반공정서와 동일하게) 그들이 상실한 정치적 대의에 대한 심리적 보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이 표방하는 대의가 학생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상실되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 대의의 나르시즘적 상실은 그것의 진정한 종언과 다르다. 앞서, 공대생의 경우에도 그들에겐 그들만의 '정의감'이 없지 않다. 왜 없겠는가? 그리고 이런 상상적 정의감에는 '학교 이미지'라는 상상적 자아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어떤 새로운 추세라기보다는 마치 좌파 정치의 공백이 남겨진 정치적 공간에서, 인종주의적-민족적 정서가 발흥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지원은 에티엔 발리바르의 노선을 따르면서, 이러한 정치적 '대의'가 그 자체로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며 그러한 대의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제도적 장치(학생회)를 통해 학생사회의 권리영역을 보장하는 것이 가능한 근본적인 정치적 개입임을 단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입장은 학생사회에의 참여에 대한 지난날의 열광이 이미 끝났다는 속 편한 단정을 내포한다. 그러나 사실은 학생사회의 “대의”에 대한 열광이 우려스러운 방식으로(학교 이미지에 대한 퇴행적 열광 등등) 재전유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라캉이 말한 “상실된 대의(Cause)의 나르시즘”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학생운동의 종언은 학생운동의 상실된 대의에 대한 나르시스적 고착이 아닌가? 말하자면 이러한 제반사정은 학생운동이 취하던 정치적 대의를 새로운 수준에서 새롭게 정식화할 필요성을 요청한다.
4.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학생운동의 종언은 실질적으로 학생운동이 '끝났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국문학의 종언이 문단문학 작가들의 유명세에 힘입어 지리멸렬하게 지속되는 사태를 아이러니하게 가리키듯, 학생운동의 종언 역시 어쨌든 존속되는 이런저런 학생운동과 학생사회 간의 지리멸렬한 관계가 장기 지속되는 사태를 겨냥해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 때문에라도 학생운동의 대의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백을 배경 삼아 학생회라는 물질적/제도적 영역을 재구성하겠다는 이지원의 발상의 모순적 귀결을 지적해야한다. 그는 '학생회'가 매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사실을 간과했다. 어쨌든 운 좋게 학생회를 점거하더라도 이후에 올 선거에서 다른 운동권 선본과, 또는 비운동권 선본과 '경쟁'을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학생운동의 종언'이라는 것을 단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학생운동의 분파들을 '없는 셈' 쳐도 된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오히려 어떤 수준에서 학생운동의 영향력과 그것이 표방하는 '대의' 그리고 그것과 다면적으로 경합하는 대중적인 정서와 상상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사회의 재구성이라는 기획을 사고할 때 우리는 그러한 학생사회에 포함되는 일련의 운동가들의 현실적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학생사회에의 새로운 개입을 틀을 짠다고 할 때 이것은 동시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운동과 운동세력이 표방하는 대의에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입하고 재구성하는 활동과 맞물려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학의 사례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이라는 장을 지탱했던 것은 순문학만의 어떤 문학적 대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문학의 종언>이 함축하는 건 그러한 문학적 대의가 소멸하고 대중들에게 무관심 말고는 아무런 반응을 끌어내지 않는다는 게 결코 아니다. 사태를 그런 식으로 본다면, 오히려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아직도 근대적 형태의 문학(문단문학)만이 여전히 한국문학의 특권적 심급으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문학의 대의에 대한 충실성을 새롭게 발명해야한다는 노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컨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에 충실하기 위해 우리는 문단의 권위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단보다 더 내실 있는 '문학적 권위'를 재창안하기 위해 작가들의 대안적 어소시에이션을 문단 외부에서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그저 감상적인 구호 아래 모인 젊은 작가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실천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모든 걸 포기하는 한에서라도 기존의 근대적 문학-시스템을 완전히 보이콧하는 충실성 속에서야 비로소 조영일이 염두에 두었던 문단문학의 종언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역으로 이것은 상실된 문학적 대의를 회복하는 투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같은 것이 반복되어야 한다! 학생운동이 담지하고 있던 대의 내지는 정의감이 상실되었다면 그러한 정의감을 학생회 재구성을 구실로 선거운동의 수준에서 은밀하게 보상받을 것이 아니라, 보다 공격적인 방식으로 그 대의를 환기하고 고수해야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의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도가 얼마나 흥행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애초의 종언선언에서 문단문학이나 학생운동이 흥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위기의 원인으로 파악되었다면, 두 번째 시점에서 우리는 그 위기를 파악하는 원래의 방식 자체와 과감하게 단절해야 한다. 이것만이 종언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여기서 우리는 라캉의 다음과 같은 명제를 기억해야 한다. 분석가의 피분석자에 대한 개입의 성취여부는, 그가 피분석가에게서 얼마나 ‘사랑 받을만한’지에 달린 게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개입이든 반드시 실패한다. 분석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애초에 그 성패의 척도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분석의 성패여부는 피분석가가 분석가의 제스처에서 자신의 상실된 욕망의 원인=대의Cause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 오늘의 운동가들은 학생사회의 상실된 욕망의 원인(대의)를 과감하게 고수할 수 있는가?
박원익|학부생|paxwoni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