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의 세상보기]2009 루저의 난

12월-98호 조회 수 7457 추천 수 0 2010.01.02 02:23:26
2009 루저의 난


‘루저녀’- 이는 11월 KBS ‘미녀들의 수다’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발언한 것에서 생겨난 조어이다.‘ 루저’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 는 후에 미니홈피에 ‘루저’발언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지만, 여전히 자신의‘개인적인 취향’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남성 네티즌들의 화를 부채질했을 뿐이었다. 현재 루저녀는 테러에 가까운 비난의 포화를 맞고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닥쳐온‘이런 방식의’비난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사람들은 그네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그녀를 향해 증오의 언어를 쏟아붓는 것 자체에 몰두하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발언 하나로 쉽게 ‘걸레’가 되고, ‘오크녀’, ‘된장녀’가 되었다. 넷상에서 기괴한 방식으로 오려붙여놓은 증오의 몽타주들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일말의 동정조차 아까운 존재임을 가르쳐주는 듯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TV프로그램 등에서 외모지상주의가 여/남 불문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예는 수도 없이 많은데 남성이 같은 이유로 여성들에 의해 테러에 준하는 인신공격을 받은 사례는 없다는 사실이다.
 개똥녀, 된장녀, 군삼녀……. 그리고 이번의 루저녀에 이르기까지, ‘OO녀’는 ‘개념 있는’ 남성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개념 없는’존재들이다. 특정 여성은 ‘~녀’라는 이름 안에서 쉽게 대상화되고 희화화된다(남성의 경우에 부정적인 뉘앙스로서 ‘~남’을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OO녀’라는 이름 안에서 특정한 여성은 열등한 속성을 가진,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로 그려진다. 루저녀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외모지상주의의 유일한 담지자인 듯 벼랑 끝에 몰 렸다. 문제 상황을 루저녀 개인의‘개념 없음’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 벌하는 것이 결국‘깔창을 깔아야 하는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말이다.‘ 루저녀 사건’ 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대상화된 여성상에 대한 막연하고도 테러에 가까운 증오 그 자체일 뿐 이다. 루저녀는 그녀의 발언이 많은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점을 넘어, 그 발화자가 여 성이었다는 것 자체로 훨씬 더 치열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그녀가 공격받은 원리는 ‘어쩜 그럴 수가’가 아니라 ‘감히 네 X 따위가’이다. 루저녀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녀에게 ‘~녀’라는 접미사가 붙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 잘못에 비해 훨씬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저질스러운 언어의 포화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약 5년 전 DJ DOC와 베이비복스 간의 사건이 떠올랐다. 베이비복스가 그들의 신곡에 2pac의 Exctasy의 랩 일부를 가져다쓴 것을 보고 이하늘이 “힙합도 모르는 년들 이 괜히 깝친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오빠한테 빠따 한 번 맞고 다시 시작하자’, ‘미아리복스’니‘섹스가수’니 하는 적나라한 단어까지 써가며 욕을 한 것은 모 두 DJ DOC측이었지만, 그녀들은 소속사차원에서 명예훼손 고소를 할 수 있었을 뿐이었고, 눈물을 흘리며 분쟁에 관해 대중에게 사과했던 것은 오히려 베이비복스 측이었다. 그녀들이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것은 그녀들에게 ‘힙합스피릿’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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