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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부치는 글

 

오랜 시간 살아온 터전을 순식간에 빼앗기고, 간신히 정착한 곳마저도 이윽고는 금이 그어지고 장벽으로 가리어진다. 낡고 좁다랗고 춥지만 그나마 지친 몸을 누일 수 있었던 집은 철거고시가 이루어진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불도저에 의해 쓸려나간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테러’가 일어나고, ‘보복 공습’이 이루어진다. 몇 명이 사망했고 어떤 건물이 부서졌는가의 이야기만이 흘러나온다. 그 내막과 역사는 이제 이야기하기도 지치는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막을 깊이 파고드는 작업은 이런 시점에서 더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본디 진부함에 의해 힘을 잃은 진실의 자리엔, 송곳처럼 날카로운 거짓이 파고들기 마련이므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다. 2008년 6월 이집트의 중재로 체결된 6개월짜리 휴전 협정이 만료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또다시 척박한 팔레스타인은 피로 물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곳은 폐허가 되고 만다. 공습 개시 이후 한 달이 지난 1월 18일, 이스라엘은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한다. 이번 공습으로 1,4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복과 보복으로 얽힌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갈등의 근원은 어디에 자리해 있는가?

 

 

갈등의 시작
반유대주의의 발흥과 유대인에 대한 참정권의 부정 등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이 다수가 되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시오니즘’을 주창한 시오니스트들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오늘날 가장 강력한 반-시오니즘 학자로 유명한 노만 핀켈슈타인은 시오니즘이 그 기원과 강령에서 상이한 지류들로 나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근저에는 ‘유대인이 다수가 되는 국가’라는 합의점이 깔려있음을 말한다. 덧붙여 그는,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가 1) 한 국가 내에서는 민족적 순수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담론과, 2) 각 민족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지역과 근원에서부터 연결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유대인을 탄압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갖고 있음을 논증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탄압하는 데 맞서다, 그들의 적을 쏙 빼닮게 된 것이다. 시오니즘을 따라 민족적 기원의 이야기를 추적해 들어가면, 유대인들은 자신들 민족의 터전으로서 근원적에서부터 연결된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그들이 ‘다수가 되는’ 국가를 설립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목표가 된 것은 그래서였다.


그러나 그 땅은 천 년이 넘도록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땅이기도 하다. 그 곳은 분명 ‘비어있는 땅’으로서 ‘평화롭게’ 정착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대인 무장조직인 ‘하가나’와 ‘이르군’은 아랍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을 습격하고, 불을 지르고, 그들을 내쫓았다. 나중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아랍인들이 남아 있기를 원했으나 아랍인들 스스로가 유대인들과의 공존을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달랐다.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는 아랍인들의 탈주를 계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수행한 작전은 하나같이 아랍인들에게 공포와 절망감을 일으켜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버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적과 뼛속부터 닮아있는 듯한 행위를 자행했다. 이것이 게르만 민족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히틀러가 내세운 생활권Lebensraum 개념과 다를 바가 어디에 있는가?


저항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힘의 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고 싶었던 열강들의 막대한 지원을 통해 주변 아랍국들을 격퇴시켰다. 처음에는 영국, 그 다음에는 미국이 ‘큰 손’이었다. 이스라엘의 군비는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과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급등하여 80년대에는 GDP의 20%를 넘기도 했다.(주-현재는 다시 GDP의 약 9% 수준이다.) 주변국과의 차이를 액수로 따져보면 상황이 보다 명백하게 느껴진다. 인구가 642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2006년도 국방비 지출은 94억 달러였다.(그 가운데 5분의 1이 넘는 22억 달러는 미국의 군사원조였다.) 하지만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의 인구는 1억이 훌쩍 넘지만, 국방비 지출은 모두 합쳐봐야 79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정당하지 못한 싸움을 시작하고는, 우세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 국가를 세운 것이다.

 

 

거듭되는 침략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네 번의 중동 전쟁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의 입지를 공고화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역을 밀어내고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스라엘인들은 최근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했던 곳을 밀어내고 새로이 세워지는 이른바 ‘정착촌’-그러나 실상은 점령촌-에 들어가 살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사 비용을 대주는 것은 물론, 저리로 융자를 해주며, 7퍼센트의 세금까지 공제된다. 집값 역시 훨씬 싸다. 그런데, 그런 금전적 이득이 있다 해도 항상 갈등에 노출되어 있는 곳에 들어가 살려는 이들이 있기는 한 걸까? 있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정착민’-점령민-들의 대다수는 이스라엘인들 중에서도 최하층에 위치한 가난한 사람들로, 위에서 언급한 각종 혜택들을 얻고자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온 이들이다. 이스라엘의 빈곤층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동원되어 이스라엘의 최전선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동원된 점령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정착촌에 무기를 지원하고, 이제는 분리장벽까지 건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지를 좁히려는 이스라엘 당국의 이해는 이렇듯 ‘부드럽게’ 실현된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당국은 더 많은 유대인들을 받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발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기간 유대교를 믿어왔을 뿐이고 유전적으로는 유대인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 아랍국들로부터 ‘이스라엘은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유대인을 수입한다’는 비판을 야기하였다.

 

 

분열되는 저항
1962년 창설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는 그후 수십년간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주축이 되었다. 특히 야세르 아라파트가 설립한 FATAH(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아랍어 약자)는 오랜 저항 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대타협은 오슬로 협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일로 당시 PLO 의장이었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였던 시몬 파라스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자치권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서안지구를 자의적으로 A지구(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보안, 행정권을 가짐), B지구(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권을, 이스라엘이 보안권을 가짐), 그리고 C지구(이스라엘이 보안, 행정권을 가짐)로 갈라놓고는 서안지구의 72%를 C지구로 규정한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A, B, C지구가 어떤 기준으로 나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이스라엘 관리들조차도 내놓지 못한다. 매우 자의적이고 편향된 기준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인들은 삶의 터전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좁다란 A, B지구에서만 건물을 짓고 살 수 없어 C지구에 건물을 짓게 된다. 하지만 공사를 막 끝냈을 때를 맞춰 찾아오는 이스라엘의 포크레인과 불도저에 의해, 순식간에 허무하게 철거되고 만다.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저항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자치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마당이니만큼, 팔레스타인 경찰이 이스라엘 공권력을 대신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렇듯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안정화’-실상은 탄압은 내버려두고 저항을 억누를 뿐인-를 요구하는 이스라엘 당국과 이해관계를 함께하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능과 부패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은 저항과 탄압, 그리고 다시 저항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분열한다. 테러 위협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주택을 파괴하고, 농경지를 갈라놓고 빼앗으며, 결국 서안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가는 ‘분리장벽’에 팔레스타인 기업의 시멘트가 들어가고 있다면 믿겠는가? 자치정부의 허가를 받아 간신히 설립된 기업들 중 일부는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기업들 중 일부가 이스라엘에 분리장벽 건설에 사용되는 시멘트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적행위를 벌인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마스는 저항운동과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을 동시에 수행하며 지지를 얻게 된다. 그들은 2006년, 무장투쟁만을 저항수단으로 삼던 기조를 전환하여 기성 정치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다음날,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마스 의장 야신을 암살한다. 그럼에도, ‘테러 단체’인 하마스는 결국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EU, UN, 러시아, 미국의 4개국이 모여 만든 ‘쿼텟’은 하마스의 집권을 인정하지 않고 기존에 집권하고 있었던 ‘파타’ 당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자금과 무기를 쥐어줌으로써 내전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앞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단순한 민족분쟁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당파 문제와 이권을 둘러싸고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고위층을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하위계층을 전방에 동원하여 충돌을 야기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감을 부추긴다. 서로는 서로에게 악마화되고,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갈등을 통해 이득을 얻는 부류가 존재한다. 피해자이면서도 공범인 이들이 존재하며,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다양성을 ‘민족’이라는 큰 틀에 고정시킴으로써 발생하는 분석의 투박함은, 자칫 이스라엘 하위층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적 연대 가능성을 차단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소식통은 이러한 내막을 제대로 드러내려 하지 않고, 표면적인 갈등만을 전달할 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가면 돌을 던진다. 하마스는 ‘테러’를 벌인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폭력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칫 보다 거대한 폭력을 어두운 장막 속에 가리어두는 일이 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살아온 삶의 터전이, 보상도 기약도 없이 순식간에 쓸려나가는 것이 일상인 속에서, 그리고 눈앞에 현존하는 명명백백한 공포와 마주하는 것이 생활인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무기를 내려놓고, 돌을 내려놓고, 주먹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면,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은 죽음보다도 더 무력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을 버텨내는 외로운 삶을 접하는 태도는, 보다 진지해야 하지 않을까.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읽을거리들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팔레스타인과 국제분쟁에 관한 책 여러 권을 참조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은 책 세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땅의 삶과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겨났다면 이 책들을 펼쳐듦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기성 미디어가 전달해주는 피상적인 영상과 소식에 질렸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훑어보시길.

 

  • 라피끄-팔레스타인과 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엮음, 메이데이
    팔레스타인 인권운동을 활발하게 해온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펴낸 책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처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책. 이-팔 분쟁의 전개 양상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상, 그리고 아랍 문화에 대한 소개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연대 방법을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책 후반부에 소개된 책과 영화 등의 자료 목록 역시 참조할 만하다. 기성 언론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자세히 서술하여, 이-팔 분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보다 새로운 관점을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 노만 핀켈슈타인 지음, 김병화 옮김, 돌베개
    이 책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해온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것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폭넓게 제시한다. 핀켈슈타인은 이 책에서 기존의 시오니즘 지식권력이 해석한 이-팔 분쟁의 이미지를 반박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없는 황무지였다거나 이스라엘이 고의로 팔레스타인인들은 내쫓지는 않았다는 주장, 그리고 정착촌은 점령이 아니라 개척이라는 주장과 이스라엘은 항상 평화적 해결을 추구했다는 주장을 역사적으로 해부하여 그 허구를 낱낱이 벗겨낸다. 
  •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미국의 시사만화가 조 사코는 제1차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민중봉기) 당시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여 저항의 현장을 직접 보고 접하였고, 그 현장을 만화로 옮겨냈다. 형식은 만화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위트와 해학이 가득하며, 한 입장에 매몰되기보다는 여러 입장과 상황의 서로 다른 목소리들을 들으려 한 점이 인상적이다. 조 사코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일상화된 탄압을 고발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어려움을 고발하는 길로 나아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을 덤덤하고 과장 없이 그려내어, 페이지를 모두 넘기고 나면 진한 여운과 비감이 남는다.

 

세종 | 편집위원 | halbschatt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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