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토론마당 : 풍물패의 연습 공간 문제
1.
풍물패 소음문제 해결은 가능하다!
자게사랑,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고파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이래 들어본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이름 이다. 여기서는 학내외의 굵직한 사건들부터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고대생들의 여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세 커뮤니티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의견이 오가는 문제가 바로 풍물패 문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풍물패와 풍물패 소음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풍물패와 학생들의 ‘잃어버린 10년’
학내 풍물패는 중앙풍물패부터 각 과반 소모임에 이르기 까지 10여개에 이르고, 풍물패원은 각 학번당 100여명에 달 한다. 풍물패와 학생들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만 하다. 99년 중앙광장 공사 시작과 함께 대운동장 과 돌벤치의 절반, 02년 백주년기념관 건설과 함께 경영대 앞 소나무 호상공터가 사라지면서 연습공간이 대폭 줄어들었고, 03년부터는 민주광장에서 달집태우기 불허, 05~06년 부터는 민주광장에서의 연습불허, 인촌기념관 대관 축소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풍물패가 좁은 연습공간(남은 절반의 돌벤치)로 몰려들면서 엄청난 소음 문제가 야기되었다. 또한 학교 측의 자치활동 탄압 수위가 높아져 2003년 대동제 기간에 풍물패협의회와 3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만든 장승을 학생처에서 일방적으로 철거했으며, 어윤대 전 총장은 재임시절“풍물패들 산으로 다 내쫓으면 안 되나?”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요컨대 학교 측의 일방적인 건물공사와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 은 풍물패 소음문제를 야기했으며 풍물패와 非풍물패 학생들의 갈등을 낳고 있다.
소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풍물패의 자치활동과 소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몇 년 간 드문드문 진행되었다. 가장 최근의 일은 2007년도 전체 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통과된 ‘풍물패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표자 결의’다. 당시 이공계 풍물패장이 교수에게 따귀를 맞으며 촉발된 문제는 풍물패 관련 학내 갈등이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것을 방증한 사건이었다. 그러 나 아쉽게도 전학대회 결의와 달리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대표자들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풍물패 측의 문제해결을 위한 사후 활동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규모가 있고 성과가 있었던 활동은 2004년 봄에 있었다. 당시 유일한 연습공간이었던 대강당 앞 돌벤치가 SK관 건립과 함께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앙 풍물패 고대농악대, 문과대 푸른소래, 사범대 소리사위, 각 풍물패가 속한 동아리연합회, 문과대학생회, 사범대학생회가 나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공간/소음 문제 해결 을 위한 학교 측과의 교섭, 그리고 대규모 서명운동이 있었다. 여기에는 풍물패 뿐 아니라 학내 수십 개의 체육동아리, 노래패, 연극동아리, 밴드까지 참여하여 자치공간 축소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현재 4.18 지하 연습공간, 농구장 옆 연습공간이 확충되었다.(1)
학생vs학생? 학생vs학교!
위에서 살펴보았듯 풍물패 소음문제는 결국 ‘자치공간’ 문제가 핵심이다. 그리고 ‘자치공간’을 둘러싼 학교와 학생 사이의 대립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학교는 언제나 풍물패 소음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어차피 공사야 강행하면 되 고, 소음문제는 팔짱끼고 있어도 ‘풍물패 vs 非풍물패’의 싸움이 터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2004년 도 사례로부터 찾을 수 있다. 당시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단위는 풍물패, 학생회, 그리고 광범위한 동아리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풍물패 자치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학교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일부 성과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제는 남아있다. 4.18 지하 연습공간은 방음시설이 불량하여 세미나실에 피해를 주며 돌벤치가 SK관 공사로 인해 언제 허물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돌벤치에 모인 풍물패들의 연습은 서관, 교양관, 국제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에 차질을 준다. 풍물패협의회는 총학생회 선거기간 동안 풍물패 문제해결에 대한 공개질의를 보냈고 각 선본은 문제해결에 힘쓰겠다고 답변했다. 이제 ‘소통시대’가 43대 총학생회로 당선 되었다. 소통시대 총학생회는 풍물패, 그리고 학우들과 문제해결을 위한 ‘소통’그리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풍물패들도 자치활동과 쾌적한 수업을 원하는 학우들을 수 없이 만나야 한다.(2) ‘학생회-풍물패-학생’삼자간의 고 리가 튼튼하다면 풍물패 소음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로부터 ‘자치활동의 확대’와 ‘쾌적한 수 업’그리하여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1) 2004년초, 대책위원회의 요구안은 풍물패 연습을 위한 대체공간 마련이 핵심이었다. 풍물패 측이 제시한 대안은 인촌기념관 뒤 공터, 국제관 지하주차장 개조, 타이거플라자 지하 등이었다. 학교 측은 인촌기념관 뒤는 개운사라 안 되며, 국제관 지하주차장은 화재위험이 있어 안 되고, 타이거플라자 지하는 상업시설이라 안 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학교는 3월 이후 대책위원회 활동이 확대되고 때마침 등록금 문제로 비상학생총회가 열릴 기미가 보이자 현재의 4.18 기념관 지하 공간과 농구장 옆 공터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9년 현재 여전히 ‘대안공간’문제가 핵심이다.
(2) 얼핏 보면, 자치권과 수업권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로 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지 않다. 자치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수업을 듣는 학생이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동아리부터 과반 소모임 등 여러 자치활동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홍묘_R|대학원생(전 풍물패 단원)
2.
풍물패 논쟁, 학내 풍물패들의 근원적 성찰이 필요할 때
그랬다. 풍물패 활동이 하나의 시대정신이었고 대학사회가 가지고 있는 열망의 분출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현재 풍물패는 소음을 내는 대표적인 주체로 규정되고 있고, 캐치볼과 더불어 교내에서 ‘천덕꾸러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풍물패의 특수성이란 ‘트인 장소’로 규정될 수 있겠다. 풍물의 경우 여타 연행 예술분과 동아리와는 달리 타악기가 주가 되므로 어지간한 방음시설이 아니고서는 건물 내에서 연습하기 어렵다. 게다가 풍물의 소리는 건물 전체가 울릴 정도이기 때문에 밀폐된 연습공간에서의 장시간 활동은 풍물패원에게 난청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적어도 연습 때 소리를 줄이는 노력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으나, 언제까지 소리 없는 연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역시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풍물패 문제에 학교당국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십여 년간 학교는 매년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고, 그와 반비례하여 비교적 자유로웠던 야외공간은 축소되었다. 대운 동장은 없어졌고, 돌 벤치는 구역이 좁아졌다. 하지만 활동 장소가 없어졌다고 풍물패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당연히 좁은 구역에 여러 풍물패의 활동이 중첩되었다. 이에 각 풍물패,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교내 구성원들은 지난 수년 간 꾸준히 학교 당국에 문제해결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4.18 지하의 좁은 연습실 정도일 뿐이다. 사실상 학교는 풍물패에 대해 탄압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고, 지루한 기다림에 학내구성원의 목소리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는 교내 풍물패의 생성과 그 이후의 자취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풍물은 대체로 야외활 동일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 풍물은 사물놀이와 달라서 단순히 기교와 장단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와 공동체 구성원이 풍물을 통해 일체감을 획득하고 삶의 고양을 지향하는 활동으로 규정된다. 풍물의 성격에 같이하고 있는데, 즉 풍물은 일종의 민족 정체성의 퍼포먼스이다. 풍물이 수반하는 상징적. 상상적 한민족의 지형, 즉 이데올로기적 공간으로의 ‘시골’(농촌사회)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혼을 보존하는 곳’, ‘우리가 자란 곳’, ‘우리의 본질적 (민족)정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감정적이고 상징적 인 의미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과거 대학사회가 기성 계층, 특히 억압적 정부권력에 대항하던 시절에 풍물의 이러한 특징이 학생들에게 (선택적으로) 조명되었고 각광받았다. 우리 학내 풍물 동아리의 대부분은 이 시기의 흐름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조직이다.
풍물패 내적으로는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테마를 다루고 실험적인 장르를 선보이는 등의 적극적인 발전이 있었겠지 만, 앞서 말한 학내 풍물의 근원적 성격은 수십 년간 획기적 인 변화가 없었다. 각 풍물패의 기원과 지난날의 활동이 내 포한 성격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진정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으려는 풍물패는 사실상 ‘없다’. 지난 과거를 감상에 젖어 되돌아보고 풍물패가 사실상 명맥만 유지된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을 ‘지키겠’다고 말 한다. ‘전통’이란 무서운 굴레다. 반면 대학사회는 그 안팎으로 매년이 새롭다. 각종 자치활동에서 학우들이 관심을 돌리는 현실을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침탈’에 따른 ‘공동체의 위기’라고 개념화할 수 있는가? 풍물이 내 포하고 있는 목표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풍물이 가지고 있는 학내 자치활동으로서의 가치는 분명 낮아졌다.
따라서 풍물을 ‘소음 공해’로 생각하는 학내 구성원들이 늘어난 것을 두고 사람들의 음악 취향이 편향되었다든가 하 는 주장은 곤란하다. 이러한 인식 변화가 어떤 방향을 담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이 해하고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분명히 지금 교내 풍물소리를 소음으로 생각하는 학우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 문제는 풍물패에게 귀속되고, 그간의 일들에 대해 소극적으로나마 풍물패의 사과와 해명이 요구된다.
대학사회의 끊임없는 변화는 어떤 활동을 고무시키는가 하면, 다른 어떤 활동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풍물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다른 많은 사람에게 풍물은 거추장스럽다. 만약 지금의 풍물패가 학 우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이상적인 자치공간을 얻어서 속된 말로 ‘짱 박혀서’연습한다손 쳐도, 너른 공터에서 흥겹게 판굿을 벌리던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관심 속에 얻은 자치공간으로 무관심의 자치활동을’, 그것이 풍물패가 원하는 바인가?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지 않는 한 ‘풍물패 논쟁’ 의 대립구도가 단순히 학생-학교로 세워질 수는 없다.
ㅇㄹ | 학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