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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노동권을 말하다
빈츠씨 | 장애인권위원회 위원
빈츠씨는 6년 전 소리소문 없이 고려대학교 문과대에 입학한 시각장애 학생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운명에 이끌려 장애인권위원회에 몸담게 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학내외의 교육권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장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세월을 보냈으나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취업과 노동권에 대한 고민도 짊어졌다. 최근에는 몇번의 아르바이트 면접 실패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종일 투덜댄다. 하지만 인생을 비관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으로 넓혀서 고민하고 이슈화하고자 노력중이다. “저의 실존적 문제가 타인의 그것과 겹치는 지점에서 연결되고 확장되어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세상을 꿈꿉니다. 장애인의 교육권, 취업권이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고대문화를 통해 장애인의 문제가 공유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바야흐로 경제 위기, 청년 실업 120만 시대인 이때 캠퍼스에서 최대의 이슈는 다름 아닌 취업이다. 3학년, 4학년이 되면 모두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스펙 쌓기 경쟁에 돌입하고 적성과 진로 사이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그러나 나는 이 경쟁 속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고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나의 진로를 고민할 때면, ‘내가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 혹은 ‘정말 하고 싶은가’보다는 ‘무엇을 해야 내게 정당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의문에 사로잡힌다. 이 살벌한 취업 경쟁의 세계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그 취업이라는 격투장의 입장조차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의 룰에 따라 내 실력을 겨루어 보기도 전에 입장 자체를 (명시적이진 않지만 사실상) 거부당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가중되어온 나의 불안은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전에 그 험악한 실체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구성된 선택지에서 진로를 모색한다. 그러나 이 선택지는 언제나 나를 비롯해 많은 장애인들을 기만한다. 교육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각종, 공기업과 사기업에서 장애인의 존재와 권리는 묵살되고 나의 선택지를 나의 선택지가 아닌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지을 때, 나는 갈 곳을 잃고 사회 내에서 ‘보호받아야 할 무기력한 장애인’으로 남는다. 그것은 마치 그나마 기본적인 편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서 복지관을 끼고 텔레마케터 (복지관에서 소개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주어진 몇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 면접을 봤더니만, 기업체 과장은 내게 필요한 편의시설을 묻기는커녕 시각장애인이 그 일에서조차 비장애인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는 백한가지 이유를 신나게 읊더니만, ‘장애우’장애우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뜻으로 장애인에 대한 타자의 시선을 함축한 단어이다. 장애인에 대한 친근한 접근을 목표로 개발된 단어지만 장애인 당사자는 본인을 장애우라고 부를 수 없다는 데 한계가 있을뿐만 아니라, 엄연히 사회적 지위가 다르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타인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가족처럼 안고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기만적이고 느끼한 미소를 지을 때느끼는 shit한 기분 같은 것이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그 과장을 재수 없다고 욕하면서 생각한다. 어째서 애초에 내게 주어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왜 이렇게 좁은 걸까? 어째서 나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적절한 근무환경을 요구할 수 없었던 걸까? 어째서 나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취업의 문턱 앞에서는 이다지도 무기력해지는 걸까?
장애인 고용의 실태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많은 장애인들에게 노동의 문제는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로 단지 직업의 선택지가 좁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노동권은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노동의 권리는 실제로 생존의 권리, 보다 나은 삶의 질을 향유할 권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장애인들에게 이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취업의 문으로 연결되는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왔고 (중증장애인의 49.5%가 초등교육이하, 겨우 36%가 고졸학력을 갖춘 등 장애인 교육 실태는 터무니없이 열악하다) 그나마 운좋게 고등교육을 마쳤다고 해도 많은 경우 높고 견고한 취업의 문을 뚫기는 굉장히 어렵다. 이는 취업 입시에서 장애인의 장애를 고려한 기본적인 권리와 형평성마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다수의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고용촉진및 직업재활법(이하 ‘장고법’)에서는 50인 이상의 사업체의 경우 2%의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100인 이상의 사업체의 경우 2%를 채우지 못할 시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기 보다는 부담금을 택한다. 이에 한해 부담금을 내는 기업체 수는 7,302개로, 총 납부액은 1,411억원에 육박한다. 대한민국 민간 기업과 공기업의 2008년 장애인 고용률은 1.72% 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전체 등록 장애인 수가 224만 7천명 가량으로 전체 인구의 4.5%인 것을 고려해 봤을 때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이며, 장애인의 취업률이 37.7%, 실업률은 8.3%를 밑도는 현실을 여실히 반영한다. 또한 2008년 기준 장애인과 전체 인구의 취업 종사상 지위 분포도를 보면, 전체 인구 25.5%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9.3%만이 일용노동자인데 반해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노동자 총인구의 40.4%가 자영업에, 20.4%가 일용직에 종사함으로써 이 두 부분에서 가장 높은 분포도를 보인다. 전체 일하고 있는 인구대비 상용노동자의 경우 38.2%가 상용노동자이지만 장애인의 경우 28.7%만이 상용노동자로 일한다. 또한 29.4%의 장애인이 단순 노무업에 종사한다. EDI2009 장애인 통계, 노동부 &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
이러한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 고용 실태는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며 일하고 있는 장애인의 경우도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고 대부분은 자영업이나 일용직,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참담한 교육 현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형편없는 교육 여건과 낮은 교육 접근성의 문제는 애초에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또한 취업과 노동 자체에 있어서도 장애인의 기술 및 취업 교육 부재,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기업들의 비협조, 법과 지원의 미비로 인해 장애인의 노동권과 직종 선택권은 열악하고 협소하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사실상 교육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진출하는 분야가 안마사나 침술, 건강, 미용서비스업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는 형편이고 취업 교육 또한 이런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좀 더 교육받은’ 시각장애인에게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대다수 장애인의 경우 대학 입시와 진로 선택 과정에서 취업의 가능성을 고려해 적성보다는 장애인에게 그나마 ‘덜 배타적인’ 진로를 선택해서 사회복지나 특수교육, 혹은 공무원시험을 노린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적성을 고려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애학생 본인이 실제로 얼마나 기업들의 취업문이 좁은지, 혹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고용 정책의 문제점과 인식의 벽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장은 곧 인간 개개인의 경쟁력을 담보로 한 인간시장이며,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은 최대의 효율성으로 무장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의 속도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시장논리에 의해서 장애인은 소리소문 없이 경쟁력이 없는 존재로 낙인찍혀 왔다. 장애인 개개인의 고유성과 신체적 조건들이 무시된 채 사회의 일방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인 경쟁논리에 의해 당연하게 차별되고 배제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장애운동계의 치열한 투쟁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간 향상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장애차별금지법이 통과되었고,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조금씩 개정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고용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실제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납부하는 기업들의 경우,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이유로 장애인 취업교육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인이 본 사업체들의 근무환경에 적합치 않다고 말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현재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취업교육은 장애인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충분하지 않으며 그들이 생각하기에 장애인은 경쟁력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기업들이 장애인의 고용을 꺼리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근저에 놓인 차별적 인식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분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과 인식의 장벽은 여전히 장애인의 취업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현재의 장애고용 정책과 제도 하에서 장애인의 민간 기업 진출은 쉽지 않다. 또한 장애인이 취업을 했다 해도 직장 내에서 차별과 배제,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업체에 고용된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수준을 보면 전체 상시노동자의 평균 액수보다 29만원이 적게 나타난다. 또한 장애인 고용사업체의 장애인노동자를 위한 제공사항(보조 장비 지원, 인력배치, 직무 재배치 근무시간 조절, 인식개선 교육 등)의 경우, 73.2%의 사업체에서 별도로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경우 65.4%가 고려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EDI2009 장애인 통계, 노동부 &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 이렇듯 장애인노동자는 취업 후에도 비장애중심적인 근무 환경에 적응하기를 강요당하고, 이에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업체에서는 고용장려금을 타서 장애인을 고용한 후 장애인을 업무 환경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 고용장려금으로 비장애인을 고용한 후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적절한 직업 교육, 근무 환경과 업무 배분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정책이 시행되어 나타난 부작용일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과 후진 문화 수준을 드러내는 우리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장애인고용촉진및 직업재활법의 개편이 필요하다. 근로지원인서비스를 장고법에 명시하여 제도화하고, 지원고용을 실질화해야 한다. 근로지원인서비스는 기본적 업무능력을 갖춘 장애인노동자가 장애로 인하여 직장 내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때 지속적·정기적으로 근로지원을 받아 안정적 직업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서 중증장애인의 고용확대에 필수적이다. 이는 이미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보편적 서비스로 제도화되어 있다. 둘째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공공부문 6%, 민간기업 3% 이상으로 법률상에 명시하여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올바른 장고법 개정과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장고법공투단 4대 요구안 참조 물론 이러한 제도적인 개선은 실제적인 모니터링과 조사를 통해 새로운 고용현실과 장애인노동자의 경험을 반영해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운동과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노동권 보장은 단지 장애인에 대한 기업의 봉사 (혹은 장애인 고용을 통한 기업이미지 개선!) 차원이 아닌, 개인에게 그/그녀의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 맞는 근무환경을 의무로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이 직업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들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사회의 ‘배려’ 차원에서가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고려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와 취업지원센터는 무얼 하고 있나?
이제 학내의 문제를 돌아보자. 학교 홈페이지에서 고려대학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회의 리더 혹은 인재들의 생산을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단지 양질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고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기회를 제공하려 할 것이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취업지원 프로그램들과 매일같이 열리는 취업관련 상담 및 강연 등이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학교는 이러한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장애학생들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학교를 통해서 (혹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서) 장애인 취업관련 정보나 팁을 얻어 본 적이 없고, 현재 학교에 관련된 사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확신컨대 아직까지 단 한번도 학교 주최로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설명회나 취업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이벤트는 열린 적이 없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존재의의는 장애학생의 학내 교육권, 학생 복지, 생활 상담, 그리고 취업의 문제도 포함해서 장애학생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을 것이다. 또한 센터는 장애학생의 요구를 수시로 반영하여 장애학생의 기본적인 학습 및 생활 전반에 대한 학내 제도를 보강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얼마나 이런 문제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센터가 문을 연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장애학생의 학내 교육권과 노동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제 나는 다시 ‘취업’을 생각하며 기다린다.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장애학생들이 학교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모색할 수 있는 날을, 또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고, 자유롭게 일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날을, 더 이상 장애인이 ‘시혜’와 ‘복지’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경제활동의 주체, 노동권의 주체로 살 수 있는 날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