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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하세요, 등록금?
세종 | 편집위원 | halbschatten@gmail.com
등록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여러분의 식상한 눈치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반응이 조금 격하신 분이 “어쩌라고?”라 외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것만 같다. 조금 양식 있는 분이라면 “그래서 뭘 어떡할까요?”라고 물을 법도 하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생이 자살한다는 보도가 나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군말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러니 ‘다들 그렇게 버티는가보다’, ‘나도 그냥저냥 다녀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 뿐이다. 떠오르는 생각은 뻔하다. ‘문제는 문젠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다고 이 대목 읽고 책장 곧바로 덮어버리려는 당신!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즐거운 휴강
어쩌다 수업이 휴강이라도 될라치면 강의실엔 환호성이 가득 찬다. 누구 말마따나 자기 돈 내고 구독하는 신문이 어느날 하루 안 왔는데 “오오, 오늘은 신문을 읽을 필요가 없구나! 야호!” 하는 꼴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풍경은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처해 있는 상황을 집약해 보여준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것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설득하지 못한다.’ 학점관리가 지배하는 강의실 풍경 속에서 휴강은 고마운 존재다. 학점을 따기 위한 비자발적 공부를 하루나마 줄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호성의 주인들을 무턱대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간 대학 안팎에서 만나 뵌 좋은 선생님들은 거의 모두 ‘제대로 가르쳐달라는 투쟁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이야기에 깊이 동감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다 보면 학점 웬만큼 따서 제때 졸업하는 데 지장이 오잖아? 머릿속에 뭔가를 꽉 넣어가기보단, A로 도배된 대학 졸업장에다가 스펙 몇개 버무려 좋은 직장에 안착하는 게 원래 목적인데?! 어, 자기 무덤 파는 건가?” 이런 사고흐름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작금의 풍토에서 그건 ‘등록금 인하해 달라’에만 집중하는 구호보다도 훨씬 무력하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찌른다. 그러나 부모 등골을 빨아먹으며 혹은 내 미래 소득을 저당잡히며 다니는 대학에서의 배움이 헛것이라면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나와 내 가족의 피땀이 어려 있을 그 돈이, 양질의 배움을 담보하지 못하고 그저 자격증 비슷하게 졸업장 하나 챙기는 일로만 쪼그라들고 있는데 말이다.
돈 내고도 봉이 되는 나라, 돈 안내도 주인 되는 나라
중앙대학교라는 곳이 있다. 최근에 두산이 ‘인수한(이라고 쓰고 ‘먹은’이라고 읽는)’ 곳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요즘 「사립명문 정글고등학교」라는 웹툰의 한 대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인 나에요.”
헌데 대학에게 학생이란 존재가 뭔가? 당신이 사립대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당신은 교비회계의 50% 이상을 책임져주는 집단의 한명이다. (표 1 참조) 조금 오버하자면 학생집단이 대주주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중앙대학 박용성 이사장은 당당하게 “대학의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기업에 견준다면 학교법인이 주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박용성, “[중앙시평] 대학 발전과 참된 주인의식”, 중앙일보, 2009.08.28.고 당당히 주장한다. ‘학생은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고, 학교를 선택해 들어왔으니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대략 이 정도의 근거다. 대학서열체제 속에서 취한 반강제적 선택을 가지고 학생이 대단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양 기만하고 있다. 또한 그 ‘선택의 자유’를 근거로 대학 안에서의 자유를 소거해버리는 능청스러움도 보여준다. 역시 한 명의 ‘경영자’로서 철두철미하게 무장해야 할 기본 마인드는 “재주는 곰이, 돈은 내가”인 걸까!
노파심에서 덧붙이건대, 돈 많이 낸 만큼 권리를 달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럼 공짜로 대학 다니는 장학생이라든가 유럽 학생들은 노예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얘기나 다름없게 되니까. 분명한 건, 학생은 단지 그 학교를 선택한 원죄로 굴종하며 살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 해당 학교의 행위나 정책에 분명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나라는 물론 한국에서도 법적·제도적으로도 점차 뒷받침되어가고 있다.
그럼 다시 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고려대학을 동시에 이끌고 계시는 이기수 총장님께선 올초 “교육의 질에 비해 우리나라같이 등록금 싼 데가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희망적이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어느 통계를 뒤져봐도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천천히 부연하겠지만, 미리 말하자면 그때 얘긴 그냥 사람들 기분이나 좋으라고 꺼내신 덕담인 듯싶다.
등록금의 비밀 하나, 한국과 OECD
대학은 그들의 ‘합리적인 등록금 산정기준’을 숨기기에 바쁘고, 주변 비슷비슷한 대학에서 올리는 만큼 눈치 보며 올리는 데 더욱 집중하는 듯싶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83.4%의 대학들이 타 대학 등록금 수준을 고려한다니 말이다. 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 아이디어팩토리, “대학알리미, 2010년 대학별 등록금 현황 공개” 이 부분은 기획예산처 직원이 되지 못할 바에야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을 아끼겠다.
그치만 예결산 다루는 교직원이 아닌 나도 여러분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대교협 회장이시자 총장님인 그분의 말씀, 틀렸다. 한국의 국공립대와 사립대 등록금 수준 양쪽 모두 OECD 국가 가운데서 각각 2위다. (그래프 1, 그래프 2 참조) OECD, Education an a Glance 2009 이건 각 나라들 안의 물가 수준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나온 결과, 즉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한국 국공립대 등록금은 연간 4,717달러다. 5,666달러인 미국 다음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체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에 자리한 국공립대에 지원한다고 해보자. 공짜로 혹은 거의 미미한 돈만 내면 다닐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은 이런 OECD 나라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 나라들 교육수준이 한국보다 낮을 거라고 뻥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사립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립대 등록금은 8,519달러다. 20,517달러인 미국 사립대 등록금 다음으로 높다.
그런데 실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2009년 6월 발간한 책자 「세계 속의 한국 대학」을 보아도 이와 유사한 문제점들이 OECD 지표에 근거해 지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거의 확신범이다. 대교협 회장님은 자신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될 곳에서 발간한 자료조차 확인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등록금의 비밀 둘, 고려대와 하버드대
계산에 따라서는, 미국보다도 한국에서의 등록금 수준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있다. 이하의 내용은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이 작성한 “경제시평”을 기초로 다시 계산한 것이다. 우선 기준을 1인당 국민총생산(GNP)에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로 바꾸었다. 또한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는 고려대의 등록금과 장학금 수치를 자체 산출했는데, 여기서는 대학알리미 공시지표를 활용하였다.
편의상 고려대와 하버드대 위주로 한번 정리해보겠다. 하버드야 굳이 숫자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세계적으로 학비가 높은 대학이다. 다음부터 설명할 내용은 2008년을 기준으로 한 내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1인당국민총소득(GNI per capita, 명목)은 2,192만원이다. 고려대학교의 평균등록금은 840만 2000원이다. 당시 1인당 장학금은 148만 1400원이었으므로 장학금을 차감한 실질등록금은 692만 600원이다. 계산해보면 1인당GNI 대비 평균등록금은 38.33%, 1인당GNI 대비 실질등록금은 31.57%가 나온다.
미국의 1인당 GNI(명목, atlas 방식)는 47,580달러다(세계은행). 하버드대학교의 학부 등록금(보건비, 기숙사비, 학생회비 등을 제외한 순수한 수업료)은 31,456달러였다. 1인당GNI대비 등록금이 66.11%로 나온다. 상당히 높다. 그런데 하버드대학교의 장학금 지급률이 60-70%선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등록금은 훨씬 싸다. 1인당 평균장학금을 빼면 13,680달러가 나와, 실질등록금은 28.75%가 된다. 간단하게 말해, 한 학생이 실제로 떠안게 되는 등록금 부담은 고려대(31.57%)보다 하버드대(28.75%)에서 오히려 가볍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계산으로는 고려대의 장학금 차감 등록금은 1인당GNP 대비 34.9%로, 하버드대의 장학금 차감 등록금은 1인당GNP 대비 29%로 나타났다.
곁다리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 대학원들은 졸업 이후 고소득이 보장되는 법, 경영, 의학 계열의 전문대학원에는 장학금을 덜 지급하고, 인문사회 혹은 신학 계열의 대학원들에 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체감 등록금의 격차는 더 커진다. 도표를 보면 장학금을 차감한 뒤 남는 인문사회계 등록금과 신학계 등록금이 확실히 적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프 3 참조)
등록금의 비밀 셋, 세계 최저 수준의 국공립대 비율
게다가 한국의 국공립대 비율은 22.0%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그래프 4 참조) 국공립대 비율이 30%가 안 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곳 뿐이다. 안 그래도 등록금이 비싼데, 그나마 등록금이 싼 국립대조차도 거의 없다. 앞서 본 통계수치들만으로도 확확 부담스러운데, 실제로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큰 부담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 그러면, 한국 사립대 가운데서도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세계 제일의 등록금 부담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셈인 건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부담들이 완전하게 가계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 자녀에게 장학혜택이 있고, 대기업들도 직원들에게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런 혜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학자금의 지원 여부가 부의 대물림을 강화할 가능성이 짙다. 부모가 공직에 있거나 대기업에 다니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조차 받을 수 없는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있는 셈이다.
대안은 있는가
학생들은 지금의 고통에 익숙해져 이런 사실을 대단찮은 혹은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가계마다 이고 있는 등록금 부담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렇게 투입한 등록금이 제 결실을 가져다주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은 갈수록 더 많은, 또 다른 ‘부가 스펙’을 쌓는 길로 내몰리고만 있으니 말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효율과 발전만을 제일로 내세우는 오늘날의 가치기준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총체적 재평가’는 모범적 답안이면서도 가장 무력해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줄 전망 없이 고민의 필요성만을 촉구하는 일은 피로감을 낳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은 지금의 고통을 단지 심정적인 것으로만 놓아두어 ‘고달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내버려두는 길로 빠질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을 고민할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먼저 이루어질 만한 일들을 함께 찾아보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을 몇가지 살피고, 보다 나아간 전망은 이번 특집의 마지막 글 <대학시장화,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대신하려 한다.
지난 호 글(‘정치, 정말로 죽은걸까?’, 고대문화 2010년 봄호)을 통해서 이야기한 바 있는 ‘등록금넷’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최근 개정된 고등교육법의 개정과정에서 ‘고등교육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으려다 아깝게 실패하긴 했으나, 이와 같은 ‘빈틈’을 파고들고자 끊임없이 시도하는 곳이다. 후원하는 것도 좋겠고 아이디어를 짜내 등록금넷 카페(http://cafe.daum.net/downstop)에 올려봐도 좋겠다. 정당의 등록금 정책에 관심을 갖되,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이 있는가, 모 당처럼 슬쩍 내놨다가 다시 거두지는 않을지 꼼꼼히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바깥으로의 관심을 가짐으로써 대학에 대한 공적 지원이 늘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어떨까? 대학을 기업화해서 펀드투자로 수백억씩 굴리다가 위기가 오면 까먹도록 그저 내버려두기보다는, 또 기업의 기부금에 의존하며 기업에 봉사하는 비굴한 대학의 모델이 극단화되도록 그저 내버려두기보다는 말이다.
안에서는 대학 내부의 민주적인 운영원리를 구축하는 데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이번 고등교육법 개정안으로 의무화된 ‘대학평의원회’를 빠른 시일 내에 구성하여, 학생회가 학교의 운영에 들러리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물론, 대학평의원회가 제 구실을 하려면 학생들이 학생회의 활동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말을 거는 일이 필요함은 당연하겠다. 절망스럽더라도,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참고문헌
Harvard University, Harvard University Fact Book 2008-09
김광수경제연구소, 「<시사경제> 10-06 - 대학 등록금 문제의 실태와 해법(1)」, 김광수경제연구소 경제시평, 2010. 2. 12.
김광수경제연구소, 「<시사경제> 10-07 - 대학 등록금 문제의 실태와 해법(2)」, 김광수경제연구소 경제시평, 2010. 2. 19.
김광수경제연구소, 「<시사경제> 10-08 - 대학 등록금 문제의 실태와 해법(3)」, 김광수연구소 경제시평, 2010. 2. 26.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세계 속의 한국 대학』, 삼영문화사, 2009년 6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