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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벗어나자” - 원주 생활협동조합 방문기

진보를 위한 방법
누구나 오늘보다 나은 삶을 원한다. 이 욕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투쟁의 대상과 목표는 각자의 정치에 따라 다양하다. 흔히 좌파로 불리는 이들의 투쟁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부르주아계급이고, 투쟁의 목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철폐와 사회주의 사회건설이다. 좌파의 투쟁방식도 여러 가지인데, 크게는 진보정당을 통해 의회에서 점진적 개혁을 하는 방식, 노동조합의 파업과 투쟁으로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자연합을 건설하는 방식,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벗어난 공동체나 조합을 건설하여 이를 확산하는 방식 등이 있다.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는 자신의 정치에 달렸다. 진보를 위한 방법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2009년 1월 30일, 31일 양일간 원주에 있는 협동조합을 돌아보고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원주에서 펼쳐지고 있는 ‘나은 삶’을 보고 왔다.

원주 생활협동조합
원주는 70년대부터 故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지역자립을 위한 공동체 운동이 있었으나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파괴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다. 이후 도농직거래를 기반으로 생산자-소비자 연대를 지향하는 일본 생협 모델에 착안하여 다시 운동을 진행했고, 2000년 지금의 원주 생협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원주생협은 생산자회와 소비자위원회, 생협 본부(교육과 행사 및 조직 담당), 생협 지점(매장사업)과 농업회사(급식사업이나 농림사업에 관여)로 구성된 사업체계를 갖추고 있다. 30만 원주 인구에서 조합원은 5천 명을 조금 넘는다. 60명 중 한 명은 조합원인 셈인데, 보다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 원주생협은 지역을 여섯구역으로 나누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려면 소비자는 5만원, 생산자는 30만원의 출자금을 내면 된다. 원주생협은 생활에서 함께하는 지역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장애인 자립운동과 빈민운동, 재개발 반대 운동 등과도 연계하고 있다.

원주생협의 모토 ‘: 자연과 상생, 이웃과 협동’
협동조합의 원칙은 자발성, 자주성, 조합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 보장, 내부 민주성 등으로 요약된다. 원주 생협도 이러한 원칙에 기반한다. 원주의료생협에는 1,200여 명의 조합원과 40명의 활동가가 있다. 관계에 기초한 의료생협은 일방적 수혜구조가 아닌 지역주민과 환자중심의 소통 공간이다. 물리적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적 관계에 의한 정신적 치료도 진행된다. 항생제 남용도 없다. 원주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는 이동권 투쟁을 비롯하여 장애인 교육을 진행한다. 또 노숙인들의 자립을 유도, 지원하는 공간인 갈거리 협동조합도 존재한다. 원주 위스타트we start는‘욕구에 기반한 복지시스템’을 지향하며 사회적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다. 위스타트 활동가들은 빈곤은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 아래 ‘개인의 건강은 사회가 건강할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들이 공동체의 복원과 자발성의 중요함을 알고 마을주민들과 일일이 소통한 결과, 위스타트는 주민들 스스로 이웃을 위해 돌봄 노동을 자원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생협은 유기농마트가 아니다
유기농 음식판매점으로 유명한 <한살림>은 웰빙 열풍 이후 사업이 확산되었다. 이후 운동조직에서‘마트’로의 인식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한살림>은 단순한 유기농 마트가 아니다. <한살림>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농업의 가치를 강조한다. 오늘날 농업은 공업화되었다. 로컬 푸드가 없는 지역사회는 다국적 기업의 식량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주 <한살림>은 로컬 푸드의 중요성을 알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며 자립 가능한 지역식량체제로의 변화를 원한다. <한살림>은 농업의 가치를 기반으로‘정당한 가격’을 추구하며, 농민과 소비자의 연결을 통한 상생을 추구한다. <한살림>은 가공방식에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보다‘인간적인’생산방식을 추구한다. 여기서‘인간적’이란 ‘관계맺음’을 말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계 맺어져 있다면, 음식에 장난칠 수는 없다.

“노조에는 희망이 없다.”
80년대 노회찬, 주대환 등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김용우 선생은 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붕괴 후 협동조합을 통한 ‘공산주의적 삶’을 현실로 만들고자 원주에 왔다. 그를 비롯한원주의 활동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생산력중심주의와 물질주의를 벗어난 대안을 추구한다. 그는 요즘 가공 중심의 2차 산업에 기반 한 ‘협동기업’을 기획중이다. 협동기업은 8시간 노동과 임금체계 자체를 벗어나 노동자들의 출자금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CEO가 되어 생산과정을 설계하고 욕망을 비운 노동을 하는 ‘전혀 다른’ 기업을 꿈꾼다. 김용우선생과의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무르익었다. 그에 따르면“노동조합은 자본에 묶여 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만 요구해서 인간의 삶이 질이 나아질까. 공동체는 복원될 수 있을까. 그는 노조에 대한 희망을 버린 듯 보였다. 원주생협은 여러차례 민주노총에 사업 건의를 했지만 번번이 넘을 수 없는 벽을 경험했다고 했다.

자립은 공동체에서 시작된다
노조는 투쟁이 끝나면 회사로 돌아간다. 기업이 망하면 노조도 망한다. 그렇게 ‘묶여 있는’것이다. 이걸 깨려면 생산관계 판을 새로 짜야 한다. 그러나 기업을 망하게 하는 투쟁은 결코 하지 않는 한국 노조의 현실을 볼 때는,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노조는 희망이 없다. 원주생협은 노동소외를 노동협력체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며, ‘자립의영역은 공동체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지역에 기반한 운동이 중요한 이유다. 김 선생은 “기존의 공동체 운동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일갈하며 “작위적으로 연대를 만들어서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는 보다 인간적인 것이 필요하다. 동료애가 생겨나면서 문제의식이 발생한다.” 동료로서의 커뮤니티가 공동체를 복원시키고, 이때 협동조합은 ‘새 판’을 짜는 공간이 될수 있다.

협동조합의 가능성
원주생협의 대외적 목표는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것이다. 생협은 이웃 간의 유대감(동료애)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생산과 소비에서 반자본적인 대안 공간을 추구한다. 공상적인 공동체 가 아닌, 실제 삶 속에서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느리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은 계속 실천하며 확장해나가는 운동이다. 협동조합에서의 경제행위는 이윤추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인간적인 무엇을 추구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는 다른 매우 중요한 차이다. 정말로‘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철운|사회학과|pierc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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