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 좋았던 옛 시절

10월-79호 조회 수 2766 추천 수 0 2006.12.05 02:48:53
komun *.152.102.86
200610_pyun.JPG
요즘 TV에 ‘해피투게더’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쟁반노래방’으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인데, 요즘에는 ‘프렌즈’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프로그램의 구성은 간단합니다. 연예인 두 명과 둘의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동창이 각각 5명씩 나옵니다. 동창생은 학창시절 연예인의 비화를 폭로(?)하고, 연예인은 많은 보조출연자 사이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동창생을 찾아냅니다. 그 프로그램의 재미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동창생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창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느냐에 달려있고, 다른 하나는 연예인이 동창생을 얼마나 아슬아슬하면서도 정확하게 찾아내느냐에 달려있지요.

프로그램을 이끄는 이 두 요소는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답은 무척 쉬워요. 짐작하셨듯이,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가 바로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예인의 동창생이 이야기하는 온갖 모험담을 들으며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래, 학교에 그런 애가 꼭 하나씩은 있었지.” 뭐 이런 식으로요. 연예인이 친구를 찾을 때에는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동창 얼굴을 떠올리며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그 때 그 친구는 지금쯤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요.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항상 돌아오지 않는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 둘 중 하나로 드러납니다. 가끔 저는‘프렌즈’를 보면서 우리의 황금시대는 언제일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을 이야기할 때 쉬는 시간마다 함께 놀았던 친구들, 하굣길에 먹었던 엄청난 양의(!) 떡볶이와 아이스크림,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보면 더 재미있던 만화책 따위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옛 추억은 참으로 아름답고, 저도 그 소중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중등교육과정을 거쳤다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교복을 입히고 머리를 밀었던 학교, 선배라는 이유로 이런 저런 폭력을 가했던 상급생, 새벽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자율 아닌 자율학습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기억은 그리 유쾌한 편에 속하지는 않아요.

과거를 황금시대로 추억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업은 오늘의 괴로움을 잊는 진통제 역할을 해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힘들었던 고3시절도 즐거웠다고 기억하는 건, 그만큼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팍팍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이 어제의 연속이고 내일은 오늘의 연장이라면, 그리고 어제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면, 어제 하루는 즐거웠다고 추억하는 일이 더 힘든 내일을 부르기 쉽습니다. 흔한 두통은 진통제 한 알이면 충분하지만, 큰 병에 걸렸을 때에도 진통제만 먹으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지요.

이번 고대문화 10월호는 여러분이 어제와 내일의 환상에서 벗어나 오늘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여러분에게 지금 이 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며 좀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브레히트가 말했듯이, 우리가 “좋았던 옛 시절이 아니라 언제나 나쁜 현재에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 komu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29 16:43)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10월-79호 편집실에서 - 좋았던 옛 시절 komun 2006-12-05 2766
90 10월-79호 2006년 10월호 목차 komun 2006-12-05 2318
89 10월-79호 표지모델 인터뷰 komun 2006-12-05 2542
88 10월-79호 대자보리뷰 - 열사에게 답하라ㅡ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komun 2006-12-05 2092
87 10월-79호 학생특집 - 도비라 komun 2006-12-05 2490
86 10월-79호 학생특집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komun 2006-12-05 2144
85 10월-79호 학생특집 - 설문조사 : 고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komun 2006-12-05 2020
84 10월-79호 학생특집 - 좌담회 : 운동권·비운동권, 현상과 전망 komun 2006-12-05 2022
83 10월-79호 학생특집 - 제발, 네 멋대로 해라 komun 2006-12-05 2109
82 10월-79호 안암5가 26-5 komun 2006-12-05 2068
81 10월-79호 똑똑똑, 문 좀 열어주세요 - 2년 전의 올리브 운동을 기억하며 [1] komun 2006-12-05 2152
80 10월-79호 ‘공순이’ 언니 - 구로 디지털 단지역 기륭전자 komun 2006-12-05 2082
79 10월-79호 군대가기 싫지 말입니다 komun 2006-12-05 2427
78 10월-79호 화보 komun 2006-12-05 2291
77 10월-79호 학술 - 맑스 읽기 Ⅱ 맑스로 가는 길 komun 2006-12-05 2277
76 10월-79호 만평 komun 2006-12-05 2363
75 10월-79호 역사 - 울타리 저편 이해하기 komun 2006-12-05 2236
74 10월-79호 환경 - 소박한 생태주의를 향한 몇 가지 질문들 komun 2006-12-05 2113
73 10월-79호 만화 komun 2006-12-04 2422
72 10월-79호 서평 - 매력적인 참고문헌을 찾아서 『페 미 니 즘 의 도 전 』 komun 2006-12-04 2025
71 10월-79호 영화평 - 가을날, 예쁜 그녀들을 만나 고마움에 행복해졌다. komun 2006-12-04 1993
70 10월-79호 미디어 비평 - 달인의 생활 komun 2006-12-04 2001
69 10월-79호 고대로 보는 사진 komun 2006-12-04 2041
68 10월-79호 고토마 - 양방향 소통의 수업이 가지는 의미 komun 2006-12-04 1770
67 10월-79호 고토마 - 수업에 대한 교수, 학생 모두의 책임감을 결여시키는 발표수업 komun 2006-12-04 1769
66 10월-79호 이대로 괜찮겠어? komun 2006-12-04 1774
65 10월-79호 고대문화상 - 시 당선작 komun 2006-12-04 1776
64 10월-79호 고대문화상 - 소설 당선작 komun 2006-12-04 1683
63 10월-79호 독자투고 - 현 시기 민족주의 비판에 대하여 [1] komun 2006-12-04 1666
62 10월-79호 독자투고 - 어느 덧 생긴 횡단보도에 komun 2006-12-04 2083
61 10월-79호 수습위원의 세상보기 -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komun 2006-12-04 1906
60 9월-78호 화보 [308] komun 2006-11-05 2608
59 9월-78호 편집실에서 komun 2006-11-05 2173
58 9월-78호 2006년 9월호 목차 komun 2006-11-05 2124
57 9월-78호 표지모델 인터뷰 [276] komun 2006-11-05 2167
56 9월-78호 총장 특집 소개 komun 2006-11-05 2284
55 9월-78호 총장 특집 - 어윤대, 총장에 대하여 komun 2006-11-05 2848
54 9월-78호 총장 특집 - 학생 인터뷰 komun 2006-11-05 1942
53 9월-78호 총장 특집 - 교우 인터뷰 komun 2006-11-05 2140
52 9월-78호 총장 특집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166] komun 2006-11-05 229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