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주고 싶은 휴지통
몇 시간, 심지어는 하루를 꼬박 새면서까지 정체되는 설 귀향길에서 최고의 휴식은 단연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해먹는 재미이다. 지난 설날에도 어김없이 호도과자와 구운 감자를 찾아 차에서 내리는데 어라, 뭔가 익숙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캡슐 모양으로 나란히 배열된 KT&G 휴지통이 휴게소 상점 앞에 서있는데 그 모양새가 학교 휴지통과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KT&G의 로고가 새겨진 그 휴지통이 매일 들락날락거리는 학교에서도, 호도과자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휴게소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었음은 그때까지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지난 2002년 말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정부 정책에 따라 민영화되면서, 한국담배인삼공사는 공사(公社)라는 명칭을 쓸 수 없게 된 동시에 세련된 이미지를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롭게 태어난 이름이 바로 'KT&G'이다. 일단 외양은 세련되게 재탄생한 KT&G는 담배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예술분야 지원, 사회봉사단 구축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그 가운데 환경보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것이 바로 휴지통 무료 설치 프로젝트이다. 그 덕분에 고려대뿐만이 아니라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도 각 대학의 상징과 관련된 색깔과 모양을 지닌 휴지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서울과 경기도의 여러 구에서도 KT&G가 설치한 동글동글한 휴지통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예쁘장한 휴지통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휴지통 밑바닥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만 같다.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은 현 세대의 의무'라고 말하는 KT&G이건만 빨간 휴지통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일반쓰레기/재활용' 단 두 가지이다. 그런데 잠시, 재활 가능한 쓰레기는 종이류, 병류, 플라스틱류, 캔류, 고철류, 의류의 여섯 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적어도 종이류와 병·캔·플라스틱류의 구분은 해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재활용품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묶기에 구겨진 시험지와 사이다병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어 보인다. KT&G는 재활용 분류라는 상식을 아예 몰랐던 건지, 아니면 알아도 상관없었던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학교는 공짜 휴지통이 좋았을 뿐이고, 결국 빨갛고 동그란 휴지통이 교내 휴지통으로서의 정식 지위를 얻은 지 몇 년이 흘렀다. 오늘도 휴지통의 오른쪽 '재활용' 칸은 종이든지 먹다 남긴 과일주스 통이든지 깨진 병이든지 닥치는 대로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그리고 분별없는 식사의 대가는 모두 학내 청소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휴지통이 쓰레기들을 꾸역꾸역 삼키다 토할 때쯤이면 학내 청소노동자 분들이 그 위장을 들어내어 속을 일일이 뒤지면서 다시 재활용품을 분리하고 있다는 사실, 공짜로 휴지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청소노동자들이 악취로 가득 찬 휴지통을 헤집고 있어도 상관없는 현실이 괜시리 죄 없는 휴지통을 발로 걷어차고 싶도록 만든다.
지영|편집위원|bokshoo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