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에 시장주의가 도입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연재순서
1. 의료에 시장주의가 도입되면  안 되는 이유
2. 한국, 그리고‘의료 민영화’
3. 대안을 찾아서


연재를 시작하며…
사실 실질적이고 완전한 ‘의료 민영화’ 및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루어진 국가를 제시해보라면 미국 정도만이 언급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의료보험민영화’를 공식적으로 부인한 현 상태에서 이 글은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진행 방향의 끝을 알아야 상황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음을 논할 수 있듯, 원론적인 이야기는 그 문제의 핵심을 보여줄 수 있다. 연재에서 처음으로 언급될 ‘의료보험 민영화를 포함한 완전한 의료 민영화의 문제점’은 과도기적 단계로 설명될 수 있는 현 정부 정책에 관한 논의를 위해서도 충분히 중요성을 지닌 접근일 것이다.

 


의료는 과자가 아니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재래시장에 자주 가곤 했다. 활기가 넘쳐나는 시장에는 마치 불량식품처럼 생긴 다양한 군것질거리들도 있었는데, 어머니를 졸라 그 과자들을 꽤나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과자의 가격이 올라버렸고, 나는 그렇게 비싸져버린 과자를 그만큼 덜 사먹게 되었다. 비싸진 과자는 사먹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의료’에 있어서는 이런 과자 사먹기와는 달리 ‘비싸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출발한다. 사람이라면 누구 나 다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평생의료의 잠재적인 수요자임과 동시에 질병과 사고에 직면해서는 절대적인 수요자가 된다. 이러한 의료의 특성은 근본적으로 의료에 시장이 도입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잘 나타내고 있다.


시장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에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어야 하며 그에의한 가격결정은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의료는 공급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이 긴 시간의 의학 교육과 면허제도에 의해 극히 제한되어 있고, 위에서 언급되었던 소비 분야에서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결국 기존에 전권을 쥐고 감독하던 국가가 시장으로 ‘가격결정권’을 넘겨준다면 소비자들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데 반해, 자본가와 의료 공급인들은 자의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불균형에서는 시장 참여자 중 다수의 소비자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즉, 그러한 불균형을 극복할 재력이 없다면, 의료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것이다.

 


의료와 시장의 잘못된 만남
또한 진료가 온전히 의료적 관점(주 : 환자의 건강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난 뒤 환자의 경제적 상태를 고려하여 치료방침을 설정해야한다는 것)에서 다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도입은 진료 자체를 필연적으로 현재보다 더 심각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르게 한다. 갑작스럽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상황에 닥쳤을 때 환자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그는 진료를 거부당하고, 자신을 받아줄 병원을 찾아 떠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환자는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물론, 국가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응급실에서 환자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응급실이 치료의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미봉책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진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환자가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의 범위가 그 의료 행위의 전적인 소득원이 되기 때문에, 진료의 내용은 환자의 재력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익적 목적을 띤 ‘공공 건강보험’에선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가 줄어들기 때문에 환자의 재정상태가 의료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간접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그런 방패가 제거된 상태에서는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와 진단이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다.


이런 의료 시장화의 부작용은 의료의 공급(서비스)과 재정(보험) 모두 시장화 된 미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선 일반적인 국민들의 의료비가 민영보험회사를 통해 지출된다. 보험회사는 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의 청구에 의해 의료비를 내어준다. 문제는‘의료’보험 회사라 할지라도 사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입자들의 보험청구 지불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그러한 이윤추구 행위는 자연스럽게 마땅히 받아야 할 진료의 보장내용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각종 이유를 들어 진료와 치료를 보장범위에서 제하고 다시 환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가된 의료비를 무리 없이 충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기에, 이윤창출에 충실한 사기업의 행위는 환자가 실제로 받을 의료서비스의 내용을 축소시키게 되고 만다.


설사 여러 제한조건을 갖춘 뒤 의료가 시장화되어도 문제가 그치지는 않는다. 영리목적의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필수적인 의료 활동 외 부가적인 이익창출 기제가 병원 내로 들어오게 되고 이는 부가가치를 탁월하게 창출해낸다. 문제는 그 부가가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의료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렴하게 필수항목으로 짠 건강검진보다 ‘호텔식 황제 검진’이 돈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제한된 의료자원의 쏠림현상은 필연적으로 전자를 위축시킨다. 시장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국민 건강권 전반에 걸쳐서는 독이 되는 것이다.

 


의료, 평등 그리고 줄 세우기
10만원 세금납부가 1표, 1억을 세금내면 1,000표가 아니고, 법 앞에선 만인이 차별 없이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근본 과정 및 조건에는 자본의 논리를 배제한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감당키 어려운 의료비가 발생하는 경우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태어날 때부터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그에 합당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소수가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익이 약간 침해되더라도 공적 체계에 의해 ‘최대 다수의 최대 건강보호’라는 흐름을 만드는 것이 당연히 옳지 않은가. 그렇기에 필자는 앞서 이야기를 한 것들, 그런 논지들을 조목조목 열거해야 하는 사실 자체가 유감스럽다.


머리에 구멍을 뚫어 두통을 해결하려 했던 그 시절부터, 의학과 의료 옆에는 그러한 부족한 의술을 감당해온 환자들이 함께 해왔고 그들의 온몸, 때로는 생명의 희생 속에 의학이 발전해 왔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의학을 ‘돈벌이의 재료’로 다룰 수 없고, 자본논리로 환자를 줄 세워서는 안 된다. 공공보험에서는 당연시되었던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입’시켜주는 것이 민간보험에서는 희소한 상품가치이자 경쟁력이 되는 것이 2009년 대한민국 의료의현실이다.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의료보험 민영화가 시행될 경우 인력과 기술 그리고 개발의 큰 방향은 ‘돈이 되는 곳’으로 흐르게 될 것이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서민 계층은 결국‘시장’에서 낙오되고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진욱(벙벙)|맥주를 좋아하는 휴학생|blindfor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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