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들러리? - 자유전공학부 논란을 되돌아보다

 


자유전공학부?
2009학년도 입시부터 각 대학마다 자유전공학부라는 모집단위가 대거 신설되었다. 2005년부터 자유전공학부를 모집한 한국외대를 제외하면, 자유전공학부의 대다수는 로스쿨의 신설로 법과대학이 폐지되면서 남게 된 정원을 활용해 만들어진 단위이다.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한 대학은 서른 개 안팎으로, 고려대를 비롯하여 서울대, 성신여대, 숭실대, 연세대, 영남대, 중앙대 등이 있다. 융합학문의 기치를 내걸고 인문계열 입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학 2를 가르치거나, 미국의 자유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을 벤치마킹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등, 다른 대학들의 자유전공학부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어내는 데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듯하다. 그렇다면 수시에서 32명을, 정시에서 123명을 모집한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경우는 어떠하였는가?

 


고대자전의 탄생
고려대 자유전공학부가 탄생한 면면을 살펴보면, 어딘가 꺼림칙한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전까지 가타부타 소문만 무성했던 자유전공학부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 공지는 9월 11일에야 이루어졌다. 수시모집 원서 접수는 9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8월 발간한 <2009학년도 수시 2학기 모집요강 주요사항>에서도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에 대한 내용은 확실하게 제시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자전’은 모집요강에 갑작스레 그 이름을 올렸다. 설상가상으로, 자유전공학부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조차도 원서접수가 시작된 후에야 공지되었다.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되었음에도 알려진것은 기껏 두 가지뿐이었다. 3학년 때 전공진입을 한다는 것과, 학과별 정원 제한을 하지 않고 자유배정을 실시한다는 것.


이에 김원 전 법과대학 학생회장은 2009학년도 입시 원서 접수가 모두 끝난 이후 “공전할 운명의 자전(자유전공학부)”라는 글을 올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로스쿨 법안으로 인해 신설해야 할 모집단위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논의된 것이 고시전문학과(주 : 그 이름하여 ‘인촌학부’!) 였는데, 이것이 대학을 학원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이에 학교 당국은 법학과를 폐지하는 대신에 행정학과를 법과대학 소속으로 복귀시켜 법대를 유지하고, 행정학과의 위상을 고시전문학과와 비슷하게 하는 대안을 세웠다. 그러다가 ‘법과대학’이라는 단위 자체의 존속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에 의해 불가능해지자 그저 다른 대학들이 하는 대로 자유전공학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개 속의 자전
급하게 만들어진 모집단위인 만큼, 자유전공학부는 수많은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3학년 때 전공진입을 한다는 것은 제2전공이 의무화된 학칙상 물리적으로 제때 졸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 당국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된 후에야 뒤늦게 전공 진입 시기를 2학년으로 재조정했다. 문제제기가 없었더라면 큰 혼란이 일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러한 불확실함 때문에 신입생과 학부모들은 합격을 한뒤에도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당국에 문의해본 결과 2월 중순 현재까지도 자유전공학부의 전공 형태가 단순 선택전공인지, 혹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목을 직접 선택하여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설계전공’이 가능할지의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학교 당국이 초기에 내건 100% 자유배정이라는 조건 역시 155명이라는 자유전공학부의 규모 때문에 선뜻 믿을 수가 없다. 학교 측에서는 자유배정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유배정이 실시되더라도 남는 문제는 있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으나, 대다수의 신입생들은 이른바 ‘인기 학과’에 전공을 신청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기 학과들은 애초부터 강의와 교수진의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는 점에서 100여 명이 넘는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행보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지금도 인기 학과들의 전공과목 수강신청 과정에서는 먼저 신청할 수 있는 고학년들부터 인원이 꽉 차 저학년들은 수강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인원이 수업을 듣기 때문에 수업의 몰입도에도 제한이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자유전공학부 학생들까지 진입한다면, 지금까지 제기되어 온 수업권과 교육환경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될 것이다.

 


고민도 전망도 계획도 잠시 미루고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별 고민도 없이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할 수 있었을까? 자유전공학부는 새로 설립된다 해도 추가적인 지원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관리하기 편한 단위’이기 때문이다. 자전 학생들은 자치공간도, 지도교수도 요구하기 어렵다. 전공 배정을 받고 나면 뿔뿔이 흩어질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통일된 학부로서의 위상이 거의 없는 셈이다. 자유전공학부 합격생들은 법과대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에도 아직 법과대학 학사지원부의 관할 아래 있다. 또한 수업과 전공 선택에 대해 교무처 학적수업지원팀에 문의해 보아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듣기는 어렵고, “논의중”이라거나 “아직 확실히 결정된 바가 없다”는 답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유전공학부는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듯,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도 모를 불확실한 모집단위로서 탄생했다. 자유전공학부는 몇 년 내로 로스쿨 정원 제한이 풀린다거나 법과대학이 부활한다면 곧 사라질 수도 있는 모집단위이며, 학생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받고 나면 흐지부지될 단위인 것이다. 각 학과의 정원을 재조정하자면 교수 충원 등의 추가 조치가 필요한데다 로스쿨 법에 변화가 생겨도 대처할 수가 없으니 정원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심산으로 신설된 단위가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임에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반복되지 않아야 할 무책임함
학교 측에서 곧 자유전공학부에 대한 공식적인 운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니, 학생들은 그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식적인 운영방안’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학교의 무책임함이 지워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학생들의 진로와 학업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학과와 모집단위를 확실한 대책도 전망도 계획도 없이 불쑥 만들어버렸다는 점은, 고려대 당국이 ‘학생’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학생은 단지 기존의 정원을 채우고 학교의 명예를 높일 만한 정도의 수단적 목적에서 받아들여지고 선발되어 온 것은 아닌가? 그들 하나하나의 ‘성장’이라든가 ‘자아실현’은 어쩌면 학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겨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종 | 편집위원 | halbschatten@gmail.com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1 3월-93호 고대문화 2009년 3월호 목차 file 꼬뮌 2010-02-09 9213
140 3월-93호 고대로 보는 사진 : 학생회관, 홍보관 리모델링 file 꼬뮌 2010-02-09 9931
139 3월-93호 대자보리뷰 : 2009학년도 고려대 입시 부정의혹 file 꼬뮌 2010-02-09 9424
138 3월-93호 학내 - 학내단체소개 : 장애인권위원회 file 꼬뮌 2010-02-09 9274
137 3월-93호 학내 : 막걸리대학교의 중심에서 FM을 외치다 file 꼬뮌 2010-02-09 18595
136 3월-93호 만평 file 꼬뮌 2010-02-09 22983
» 3월-93호 기획 - 교육 연대기 : 학생은 들러리? 자유전공학부 논란을 되돌아보다 꼬뮌 2010-02-09 18988
134 3월-93호 기획 - 교육 연대기 : 일제고사, 우리 집 불구경 꼬뮌 2010-02-09 12948
133 3월-93호 기획 - 교육 연대기 : 진짜 학생으로 꼬뮌 2010-02-09 30189
132 3월-93호 중간화보 : 언론탄압 file 꼬뮌 2010-02-09 22404
131 3월-93호 기획 - 언론탄압: '너'의 자유가 아닌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꼬뮌 2010-02-09 11932
130 3월-93호 기획 - 언론탄압 : 우리 모두의 '언론 공공성 사수'는 무엇인가 꼬뮌 2010-02-09 16970
129 3월-93호 학외: 비극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부치는 글 file 꼬뮌 2010-02-09 13701
128 3월-93호 연재 - 철학 : 철학함의 눈으로 본 비판의 대상 꼬뮌 2010-02-09 12076
127 3월-93호 연재 - 역사: 장일순 - 원주에서 살다 꼬뮌 2010-02-09 8096
126 3월-93호 연재 - 의료: 의료에 시장주의가 도입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꼬뮌 2010-02-09 8422
125 3월-93호 만화: 짐승의 시대 file 꼬뮌 2010-02-09 9697
124 3월-93호 미디어비평 : 이상한 나라의 신데렐라가 이 세상을 사는 법 file 꼬뮌 2010-02-09 8363
123 3월-93호 만화평 : 스펀지밥에게 소환마법을 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file 꼬뮌 2010-02-09 14234
122 3월-93호 영화평 : 켄 로치, 단순하지만 가장 절실한 치유 1. 케스(Kes, 1969) file 꼬뮌 2010-02-09 8782
121 3월-93호 강의평: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자긍심 심기 - 김상무 교수님의 <교육학개론> 꼬뮌 2010-02-09 8950
120 3월-93호 고대토론마당: 네트워크 사용자 인증제 꼬뮌 2010-02-09 7944
119 3월-93호 독자투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벗어나자." 원주 생활협동조합 방문기 file 꼬뮌 2010-02-09 8033
118 3월-93호 이대로 괜찮겠어? : 용산, 그곳 이전의 기억부터 시작하자 꼬뮌 2010-02-09 13755
117 3월-93호 편집실의 세상보기: 발로 차주고 싶은 휴지통 file 꼬뮌 2010-02-09 18003
116 12월-98호 [편집실의 세상보기]2009 루저의 난 꼬뮌 2010-01-02 9628
115 12월-98호 [독자투고]근대문학의 종언과 학생운동의 종언 꼬뮌 2010-01-02 8445
114 12월-98호 고대토론마당 : 풍물패의 연습 공간 문제 꼬뮌 2010-01-02 8504
113 12월-98호 [강의평] <프랑스혁명과문학> 수강사 file 꼬뮌 2010-01-02 10271
112 12월-98호 [서평]통일 누아르와 분단 상업주의 file 꼬문 2010-01-02 7430



XE Login